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새크라멘토 킹스 (문단 편집) === 밀레니엄 킹스 === 1998년에 팀은 에디 조던 대신 베테랑 지도자 [[릭 아델만]]을 감독으로 모시고, 기존의 리더 [[미치 리치몬드]]를 [[워싱턴 위저즈]]로 보낸 뒤 기대보다 성장세가 덜하던 포워드 [[크리스 웨버]]를 받아 개혁의 신호탄을 썼다. 데뷔 전까지만 해도 차세대 최고의 빅맨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던 [[크리스 웨버|웨버]]의 평가는 부상으로 인해 크게 추락했다. ("어깨가 멀쩡할수 있다면 악마와도 계약을 할 겁니다.") [[크리스 웨버|웨버]]는 2년차이던 95시즌에 54경기에 그치고 96시즌에 부상으로 15경기만 뛰는등 부상이 비교적 잦았다.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다재다능한 스타일이 빅맨들은 일단 로우포스트에서 뛰어야 한다는 편견이 강했던 당시에 폄훼당했던 것. 데뷔 시즌에 거의 골밑에서 공격을 했던 [[크리스 웨버|웨버]]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드리블, 중거리 슈팅력 등을 활용하길 원했고 이 때문에 필드골 성공률도 점점 떨어져갔다. 사실 빅맨이 외곽에서 전성기 시절 [[크리스 웨버|웨버]]처럼 48~49% 정도 성공률을 보여주면서 25점 이상을 올리는 건 결코 나쁜게 아니며 오히려 훌륭하다. 특히 이러면서 상대 수비를 외곽으로 끌어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돌파하는 동료 가드들에게 패스를 찔러줄 능력이 있는 [[크리스 웨버|웨버]]같은 선수는, 중거리에서 활동하는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. 그러나 일단 골밑에서 55% 확률로 득점하던 선수가 외곽을 도는 것에 당시 팀관계자들은 거부반응을 일으켰다.[* 사실 단순히 기존의 상식에 어긋나서만은 아니다. 현재 대부분 외곽선수들의 득점 범위는 3점라인 바깥까지를 포함하지만 당시에는 득점 범위가 3점슛 한발짝 안쪽까지인, 즉 웨버와 겹치는 스몰포워드나 가드들도 많았으며, 더 짧은 외곽선수들도 있었다. 그러다보니 이 위치에 웨버가 나와있으면 공격이 겹치게 된다. 특히 당시 워리어즈는 외곽이 뛰어난 미치 리치몬드가 이적한 이후였으며, 그의 자리를 메우며 에이스가 된 라트렐 스프리웰이 슛보다는 돌파로 주로 득점하는 슬래셔였기에 웨버가 골밑에서 더블팀을 유도하며 수비를 끌어오는 쪽이 유리했다. 로우포스트에서 수비를 끌어오는 빅맨과 슬래셔의 조합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샤킬 오닐과 함께 한 슬래셔형 가드들을 보면 알 수 있다. 그러나 웨버가 볼을 오래 잡고 리딩을 하기 시작하면 다른 선수들은 볼 없이 움직이며 캐치앤 슛을 해야하는데 스프리웰은 캐치앤슛을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.] 이러던 [[크리스 웨버|웨버]]가 [[모션 오펜스]]가 주축이 된 킹스의 에이스가 되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확 달라지게 된다. 볼이 끊임없이 돌아가며 오픈찬스를 만드는 킹스에서 중거리 슈팅력이 뛰어나고 가드 수준의 시야와 패스능력을 갖춘 [[크리스 웨버|웨버]]는 그야말로 보물이었고, 결국 그는 커리어 하이인 27.1점을 01시즌에 기록하며 [[케빈 가넷]]을 제치고 올NBA 퍼스트팀까지 오르게 된다. 1999년 1월에는 [[블라디 디박]]까지 FA로 받은 후, 단축시즌으로 치러진 1998-99 시즌에는 27승 23패로 플옵에 다시 간 후 점차 플옵 단골 팀으로 급부상했고, 1999년에는 토마스 구단주가 [[뉴멕시코주]]의 맥주 공급업자 말루프 형제에게 팀을 매각했다. [[릭 아델만]] 감독은 삼촌뻘인 피트 캐릴 코치에게 배운 프린스턴 [[모션 오펜스]]를 [[NBA]] 팀 중에서 최초로 전면적으로 도입했고, 이를 가장 잘 성공적으로 구현했다. 그간 약체로 있으면서 잘 모았던 전력이 [[모션 오펜스]]와 결합하면서 1990년 말과 2000년대 초반, 드디어 새크라멘토는 [[NBA]]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농구를 구사하면서 이른바 밀레니엄 킹스의 시대를 열었다. [[마이크 비비]](비비 이전 [[제이슨 윌리엄스]]) - [[더그 크리스티]] - [[페자 스토야코비치]] - [[크리스 웨버]] - [[블라디 디박]], 여기에 브래드 밀러, 바비 잭슨을 위시한 풍부한 벤치 멤버를 축으로 물 흐르는 듯한 공격 전개와 다섯 명 모두가 유기적으로 플레이하는 우아한 팀 플레이를 구사하면서 최고의 인기 팀으로 부상했다.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들은 마지막 한 고비를 넘지 못했다. 특히 가장 아쉬웠던 것은 2001-02 시즌. 정규시즌에서 레이커스에도 앞선 61승 21패의 구단 역대 최고의 성적으로 1번시드를 찍었다.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[[트라이앵글 오펜스]]로 무장한 [[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]]와 만나[* 당시 [[LA 레이커스]]는 새크라멘토 킹스, [[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]] 등과 치열한 라이벌리였으며 [[샤킬 오닐]]은 킹스를 '새크라멘토 퀸스'라고 부르며 도발하는 등 장외대결도 치열했다.] 정말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결국 졌다. 특히 4차전 99-97로 앞선 상황에서 골밑에서 탭 아웃한 볼이 하필이면 [[로버트 오리]]에게 갔고, 그게 역전 3점포가 되면서 좌절하는 일명 오리 꽥 샷으로 진 장면은 킹스 팬들에게는 정말 통한의 순간이었다. 그 순간만 버텼다면 3승 1패로 앞서나가는 것이었고[* 게다가 만약 킹스가 이 경기를 이겼다면 남은 세 경기 중에서 두 경기(바로 다음 게임인 5차전과 최종 7차전)를 홈에서 치르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. 반면 [[LA 레이커스|레이커스]]는 난적을 상대로 3연승을 거둬야 하는 미친듯이 불리한 상황.], 그랬다면 천하의 [[샤킬 오닐]], [[코비 브라이언트]]가 있는 [[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]]였다고 해도 뒤집기는 어려웠을 것이며, 동부 컨퍼런스의 상대는 정말 만만해 보이는 [[브루클린 네츠|뉴저지 네츠]]였기 때문이었다.[* 물론 네츠도 2001-02시즌 동부 컨퍼런스 1번시드였다. 그러나 이는 무시무시한 서고동저 때문으로, 네츠의 성적인 52승 30패를 그대로 서부 컨퍼런스에 가져다 놓으면 고작 5번시드에 불과하다.] 실제로 네츠는 파이널에서 레이커스한테 4:0으로 스윕당했다. 여담으로 이 시리즈는 조작 논란이 있는 시리즈이다. 그 경기에서 심판을 맡지는 않았지만 도박 스캔들에 연루되었던 팀 도너히(실제로 06/07 [[샌안토니오 스퍼스|샌안토니오]]대 [[피닉스 선즈|피닉스]] 세미파이널 3차전을 승부조작했다)가 이전부터 많은 승부조작이 있었다며 예를 든 대표적인 경기가 [[LA 레이커스|레이커스]]대 킹스의 6차전 경기. 당시 6차전에서 [[LA 레이커스|레이커스]]는 4쿼터에만 자유투 27개를 얻어냈으며 시즌 자유투 성공율이 50% 수준이던 [[샤킬 오닐]]은 자유투 할때 선을 넘는 바이얼레이션을 저질렀지만 전혀 심판의 제지를 받지 않으며(자유투시 바이얼레이션을 저질렀을 경우 그 자유투는 그냥 실패한것이 된다. 마지막샷때 바이얼레이션을 저지르면 공격권은 자동적으로 수비팀에 넘어간다.) 자유투 17개 중에 13개를 넣었다. 우아하고 아름답던 밀레니엄 킹스의 시대는 핵심이던 [[크리스 웨버]]가 부상으로 기량이 쇠퇴하고, PO에서 자꾸 7차전 접전 끝에 탈락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해체되기 시작했다. 결정적인 시리즈가 바로 2004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접전끝에 [[미네소타 팀버울브스]]에게 패배한 것이었다. 물론 킹스 자체가 다섯 명이 모두 팀 공격에 공헌하는 농구를 추구하는 팀이긴 하지만, 이 시리즈에서 웨버는 17.7점, 7.6리바운드, 3.4어시스트, 1.4스틸, 0.3블럭에 그치며 23.9점, 15.4리바운드, 4.3어시스트, 1.7스틸, 3.4블럭을 기록한 [[케빈 가넷]]에게 철저하게 밀려버리게 된다. [[크리스 웨버|웨버]]가 기동력을 잃으며 더 이상 정상급의 선수라고 보기 힘들자 2004-05 시즌 전에 노장 디박은 LA 레이커스로 돌아갔고, 중반에 연봉대비 실력이 떨어지던 [[크리스 웨버|웨버]]를 [[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|필라델피아]]로 처분하면서 점차 균열이 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